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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 자전거 배우기 초등학교 때, 여름방학이 되면  엄마는 날 데리고  친척이 살고 있는 장호원에 갔다. 그곳에서 과수원을 하고 있는  친척 집에 놀러 가서  복숭아도 먹고 나에게  조그만 휴식을 주려고 했던 것 같다. 고향마을에 비하면  장호원은 엄청 큰 도시로  보였다.          초등학교, 중학교, 심지어  고등학교까지 있었으니  나에겐 엄청난 도시처럼  생각되었다. 그곳의 내 또래는 모두 다  자전거를 타는데 익숙해 있었다.    난 자전거가 없었으니  배울 기회도 없었다. 어느 해인가 비슷한 또래의  친척 아이가 나한테 자전거  배우는 것을 가르쳐 준단다. 마을 입구 느티나무에서  자전거 배우기는 시작되었다. 뒤에서 잡아 주며 몇 번을  넘어지기를 반복 하면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게 되었고 조그만 내리막도 .. 2023. 11. 21.
달팽이가 가는 길 달팽이가 가는 길 아파트 앞 작은 정원 속 달팽이한낮 그늘에 살며시 숨었다가어둠이 오자 구물구물 나온다. 두 개 안테나 세우고 느릿느릿핸드폰 보며 지나는 사람에 치기라도 할까 조마조마하더니겨우 벽에 붙어 휴식을 취한다. 도로를 건너야 하는 달팽이정글 속 삶을 꿈꾸는 달팽이바쁜 문명은 관심이 없다. 문득 달팽이가 가는 길이점점 서글퍼지는 것은우리도 달팽이를 닮았나 보다. ​by J.J. ​​시작노트 :  문명의 발전과 환경문제, 자연과의 공존이 필요한 시기임을 절실히 느낀다. 2023. 11. 20.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의 추억 명절 상차림에는 곶감이 필수로 올라왔다.   가을에 감을 수확하여 껍질을 벗기고  볕이 잘 드는 곳에 매달아 말리면  달콤한 곶감이 된다.    이것을 잘 보관해서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올렸다.   아버진 양경공파 정 씨의 72대 손으로  가난한 시골에서도 변변치 않지만  일 년에 서너 번씩 제사를 챙겼다.   그래서 곶감 말리는 것을  중요한 일로 생각하셨다.    요즘에는 감을 줄에 묶어서 말리지만,  옛날 아버지는 가는 싸리나무를  잘 다듬어서 열 개씩 감을 꿰어  새끼줄로 양쪽을 끼워  몇 개씩 매달아 말리셨다. 산골에서 늦가을에 접어들면  제철 과일도 없고 유일하게  따다 남겨둔 감이 높은 곳에  대롱대롱 매달려 새 밥이 될는지  우리가 먼저 먹을는지 다투기도 했다.    서리를 맞은 감은 정말.. 2023. 11. 19.
하숙집 룸메이트 정들었던 시골 중학교를 벗어나  청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충주로 가서  다시 청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부모님은 멀리 떠나는 아들이  걱정되셨는지 같은 학교에 배정받은 중학교 앞  문방구 집 아들과  1년간 하숙을 잡아 주셨다.   문방구 집으로 말하면  집안이 좀 넉넉한 편이었다.   아버지가 트럭을 몰고 다니며  고추를 사거나 농수산물을 사서  도매상가로 넘기는 일로 돈을 벌었는지  중학교 바로 앞에  단독 문방구를 열었고  그곳에 딸린 집도 크게 지었다.    가끔 비가 많이 와서  강을 건너지 못할 사정이 되면  문방구 집에 몇 번 신세를  진 적이 있는데 잘 대해 주셨다.   그리고 청주에 와서  하숙집도 먼저 알아봐 주셔서 우리 부모님도 감사를 했다. 청주에.. 2023. 11. 18.
달콤한 단팥빵 달콤한 단팥빵  달달한 단팥빵한 입에, 순간 스치는 그 옛날 단팥의 기억. 쌓은 시루 위로 김이 훅훅 오르고 진한 자줏빛 팥은겹겹이 쌓인다.  뚜껑을 열라치면얼굴을 돌리는엄마의 뒷모습. .... 달콤한 팥 맛이입속에 남아 목이 메어도눈치 채일라 억지로 꿀꺽 넘기다 숨 막힌 기침에 그만 들키고 말았다. by J.J. 시작노트 : 어려서부터 팥 시루떡을 유난히 좋아했다.  그래서, 가끔 엄마가 수고로움을 감수해 주셨다. 그 달콤한 맛은 입속에 남아 지금까지도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2023. 11. 17.
강 건너기 도전 중학교 때까지 남한강과 개울을 끼고 살다 보니 물이 놀이터가 되어 자연스레 수영을 하게 되었다.  엄격히 말하자면 수영은 아니었다. 상반신은 물속의 개와 같았고 하반신은 개구리 뒷다리와 매우 흡사한 동작의 반복이었다. 그래도 물에 떠서 앞으로 나아가니, 그나마 만족했다.  남한강을 배로 건너 중학교를 다닌 나에게 여름방학 전 토요일은 신나는 날이었다. 중학교 앞에서 자취하던 친구들이 모두 강으로 돌아와 토요일 오후에 신나게 강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우리들에게 늘 도전하고 싶은 목표가 있었다.  강을 가로질러 수영해서 도착하는 것. "야. 오늘 강 한번 건너가 보자." 용감한 한 친구가 제안을 했다.한 친구만 남아서 친구들 가방과 옷을 가지고 배로 건너 오기로 했다.  우린 모두 팬티.. 2023. 11. 16.
가지 않은 길 산골에서의 삶은  가난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학교 진로와도 직결되어 있었다.   어린 마음에 그러한 갈등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어느덧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무렵,  난 부모님 몰래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내 생각을 들으신 선생님은  아쉬워하시며  너 정도면 충주나 청주의  인문 고등학교로 진출할 줄 알았는데  네 생각이 그렇다면  공업고등학교로 진학해서  거기서도 열심히 하면  대학교도 갈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이 일은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다. 논두렁으로 누런 벼가 고개를 숙이며  가을이 익어갈 무렵  담임 선생님이 날 부르셨다.  영문도 모르고 들어간 교무실에는  엄마가 와 계셨다.   그리고 나를 보시곤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 2023. 11. 15.
단짝친구가 준 점심 도시락 고교 시절  처음에는 어리숙해 보이는  친구가 단짝이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집이 잘 살지도  못 살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조용히 학교를 다녔습니다. 난, 고향을 떠나 청주로 온 후  하숙 생활을 접고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하는 자취생활이라  밥 하는 거조차 어설펐습니다.   그래서 도시락은 늘 부실했습니다.   고교 시절 점심 도시락은  대부분 점심 전 쉬는 시간에  먹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만큼 공부하면서 열량이 부족하고  성장하던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학생들만 있는  학교의 특징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친구는 점심시간 말없이  조그만 도시락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이거...   엄마가 너 주라고 싸 준 도시락인데...."  도시락에는 정성이 들어간  햄과 밥.. 2023. 11. 14.
엄마가 남긴 마지막 말 15년 유년 시절은너무 행복했지만정든 고향을 등지고멀리 공부하러  떠나는자식 걱정은 숨기고엄마는 잘하라는말 한마디남겨 주셨습니다. 엄마는 몇 해 전부터얼굴과 몸이조금 부으셨는데이렇게 밥 잘 먹고소화 잘 되는데,방귀도 뿡뿡잘 나오는데,살이 찐 거라병원에 안 가도된다고 황소고집을부리셨습니다. 1학년을 마칠 즘담임 선생님이엄마가 병원에 계시니가보라고 하셔서부랴부랴 버스를몇 번이나 갈아타고도착한 병실에엄마는 그 옛날 야윈 얼굴로돌아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본 엄마를 안고서러워 통곡하는아들의 머리를쓰다듬으시며"울지 마라세상 살다 보면울 일이 더 많다"라며다시 공부하러 가라고등을 떠밀으셨습니다. 그 이후 불과 며칠이 안 돼서담임 선생님이 또 부르시며다시 병원에 가보라고 하셔서어린 생각에 조금 안 좋아지셨나생각되어 .. 2023. 11. 13.
남한강 뱃사공 아저씨 산골 마을에서 산 넘고 물 넘고 고개 넘어 초등학교를 왕복 8km 걸어 다녔다.  산길을 오가며 일어난 많은 일들이 나의 생애에 아름다운 추억들로 물들어 있다.  그런데, 중학교는 남한강을 건너 다녀야 했다.   가는 길만 8km가 넘는 길이었다.   산골에서 2km 내려와  남한강을 끼고 있는 아랫마을에서  배를 타고 건너, 또 걸어서 중학교를 가야만 했다.  중학교를 다니는 주변 학생들을 모아서 뱃사공 아저씨는 한 번에 건너 주셨다.   그 시간에 맞추기 위해 가끔 뛰기도 했지만 엄마가 새벽같이 준비해 준  도시락을 챙겨 나오면 넉넉한 시간은 되었다. 뱃사공의 일은 동네 간 논의를 해서  강 옆 마을의 아저씨들이  몇 년을 번갈아 가면서 했는데  본업인 농사일 때문에 일정한 횟수만큼만 운영했다.   .. 2023. 11. 12.
빛이 그리는 수채화 빛이 그리는 수채화 새벽빛이 세상을 구석구석스케치하더니 뜨거운 해가 오르며더욱 선명하게색깔을 입힌다. 한낮 한껏화려함을 자랑하는꽃들도 넣고 서서히붉은 노을빛에하얀 잿빛을덧칠을 하려다 시간이 없나모르겠다는 듯, 온종일 그린수채화에 온통 먹물을 뿌리고 갔다. 빛이 없으면색도 없네. ​by J.J.  시작노트 :  항상 우리에게 있는 낮과 밤은 어찌 보면 우리에게 늘 화두를 던지는 것 같다. 2023. 11. 11.
추억의 노란 도시락 산골의 겨울은 일찍 시작된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어느새 서리가 내리고  금방 추위가 몰려온다. 초겨울 초등학교를 다니느라  아이들은 고생을 많이 한다. 점점 추워지면 교실에서는  난로를 피우기 시작한다. 학교에는 조개탄을 태우는데  불이 붙기까지  솔방울이나 장작을 태우고  그 위에 조개탄을 올렸다. 늦가을이 되면  아이들은 오후 시간에  뒷산에 올라  솔방울을 주워오기도 하고  집에서 장작을 조금 가져오는 것이  숙제이기도 했다.   그렇게 준비된 연료로   겨울방학 이전까지,  그리고 겨울방학이 끝나고  봄추위가 가실 때까지 사용했다. 그런데  교실에 난로가 피워지기 시작하면  돌아가면서 밥 당번이 정해졌다. 당시의 도시락은  네모난 노란 양은 도시락이 대부분이었다.   동그란 난로 위에 도시락을 .. 2023.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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