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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누이, 복숭아 꽃 복숭아 꽃​올해도, 올해도누이 기다리는복숭아 꽃은,​하늘 간 누이기다리는복숭아 꽃은,​수풀 우거져나무 보이지 않고​칡넝쿨세월처럼지붕 되어,​그래도, 그래도미련 남아,​살며시 내민누이 볼 같은복숭아 꽃.​​BY J.J.​​시작노트 : 매년 복숭아꽃이 필 때면 과수원을 했던 돌아가신 누이가 생각난다. 2023. 10. 18.
소풍 지금은 소풍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체험학습이라고 불린다.어린 시절 소풍은 아이들에겐 큰 행사였다.보통 계곡이나 강가로 소풍을 갔다.소풍을 가게 되면 특별한 도시락을 싸 주셨다.평소에 잘 못 먹는 김밥을 말아 주셨다.평소에는 보리밥이 많이 들어간 밥을 먹었다.그런데 김밥에도 완전한 쌀밥으로만 싸는 게 아니었다.그래서 김밥이 단단하지 못했다.소풍을 가서 밥 먹을 시간이 되면 괜스레 멀리 떨어져 먹었다.아이들이 놀리기 때문이었다.옆구리가 터진 김밥은 젓가락으로 먹기에도 버거웠다.엄마는 그것도 모르시고 선생님 도시락까지 싸 주셨다.선생님 도시락은 아예 내놓지도 못했다.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몰래 선생님 도시락도 먹었다.엄마는 빈 도시락 두 개를 보시고 아무 말씀은 안 하셨다.다음날 평소와 같이 학교.. 2023. 10. 17.
검정 고무신 내가 태어난 곳은 동시대에 가장 낙후된 곳이라 생각된다. 산골에서 가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는 멀고도 멀었다. 시냇물을 몇 번을 건너야 하고 산모퉁이를 몇 번을 돌아야 겨우 도착했다.산골의 삶은 항상 가난했다. 마을이 화전민으로 구성되다 보니 넉넉한 생활을 하는 집이 없었다.봄이 되면 산에 불을 놓아 밭을 일구고 감자나 고구마를 심었다. 밥은 감자와 보리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감자의 비율이 월등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감자는 밥그릇 안에서 돌아다녔다.그래도 엄마, 아버지가 있고 밥 숟가락이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학교 다니는 동안은 늘 배가 고팠다. 봄이면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기도 했는데 진달래꽃은 주식이었다.아이들은 책가방이 없었다. 보자기로 책을 둘둘 말아 어깨에 메고 다녔다. 신발은 대부분 고.. 2023.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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