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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검정 고무신

by 미공대아빠 2023.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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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호"

 

내가 태어난 곳은 동시대에 가장

낙후된 곳이라 생각된다.

산골에서 가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는

멀고도 멀었다.

시냇물을 몇 번을 건너야 하고 산모퉁이를

몇 번을 돌아야 겨우 도착했다.

산골의 삶은 항상 가난했다.

마을이 화전민으로 구성되다 보니

넉넉한 생활을 하는 집이 없었다.

봄이 되면 산에 불을 놓아 밭을 일구고

감자나 고구마를 심었다.

밥은 감자와 보리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감자의 비율이 월등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감자는 밥그릇 안에서

돌아다녔다.

그래도 엄마, 아버지가 있고 밥 숟가락이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학교 다니는 동안은 늘 배가 고팠다.

봄이면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기도 했는데

진달래꽃은 주식이었다.

아이들은 책가방이 없었다.

보자기로 책을 둘둘 말아 어깨에 메고 다녔다.

신발은 대부분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고무신이 찢어지면 기워서 신었다.

고무신 바닥이 낡아지면 얇은 고무로

덧씌워 신고 다녔다.

난 그게 너무 창피할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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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장마가 지면 금세 시냇물은

물이 불어 건널 수 없다.

근처 마을 어른들이 건너 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굣길에 장대비가 내렸다.

옷이고 책이고 다 젖었다.

시냇물은 불어나 걱정하시는

아버지가 나오셨다.

날 업고 건너실 때 다 닳아빠진 고무신

한쪽을 슬쩍 흘려버렸다.

"아부지, 고무신이..."

"아이쿠, 우짜노!"

고무신은 내 마음을 알기나 한 건지

빠르게 물살을 타고 떠내려가 버렸다.

아버지는 날 업어 집에까지 오셨다.

그런데 나에겐 더 낡아빠진 고무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후, 아버지는 먼 길을 걸어 장에 가셨다.

내심 새 고무신을 신는다고 신나했다.

저녁이 되어 산길 고개에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한참이 되어도 오지 않아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들어 버렸다.

다음날 아침, 난 마루에 먼저 눈이 갔다.

그런데 새 고무신은 없었다.

잠시 후 아버지가 지난번 남아 있는

고무신 한쪽을 찾았다.

그리고 시장에서 찾아오신 헌 고무신

한쪽과 맞춰 보시며,

"그래도 비슷하구먼.

오늘부터 이거 맞춰서 신고 다니거라."

"아...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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