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도착한 누이의 집에는
밤새 내린 눈이 소복이 쌓였다.
오랜만에 도심을 떠나
눈 덮인 마을을 볼 때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가난한 산골 사람들에게는
겨울이 유난히 춥고
눈 오는 것도 싫었다.
산골 마을의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와중에도
어른들 몰래 성냥을 가져와
바위 밑에 불을 지피고
개울의 얼음을 깨어
고기와 개구리를 잡아
구워 먹던 시절이 있었다.
눈이 무릎까지 오도록
쌓인 적도 있었는데
그땐 토끼몰이를 했다.
토끼가 지나간 발자국을
보면 언제 지나갔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여러 명이서 토끼몰이를 하면
가끔 멍청한 토끼가
잡히기도 했다.
학교를 갈 때면
늘 내가 제일 먼저 갔다.
그래서 늘 눈 위에
내 발자국이 처음으로 났다.
그걸 보며 뒤에 오는 친구들은
내가 먼저 학교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새 내린 눈 위로
누군가의 발자국이 있었다.
어른 크기의 발자국인데
선명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 지나간 발자국임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려니 하고
학교로 가고 있는데 어느 순간에
그 발자국이 사라져 버렸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없었다.
난 온몸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
'이거 어디로 없어진 거야'
'엄마야, 나 살려라...'
학교로 내달리다가
몇 번이고 넘어져서
옷 속으로 신발 속으로
눈이 들어가서 녹아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몸의 열기로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달렸나 보다.
그해 너무너무 추웠고
눈이 녹을 사이도 없이
많이도 왔다.
나는 늘 그 장소에만 오면
넘어지든 말든
줄행랑을 치곤 했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눈도 완전히 녹았어도
그 근처를 지날 때면
너무 무서웠고
그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친구들한테 말해봐야
놀림감이 될게 뻔했다.
누이 집에서 맛난 것 먹다 보니
문자 메시지가 떴다.
오늘 밤부터 눈이 많이 온다니
각별히 주의하라는 대설주의보.
문뜩 그 사라진 발자국이 다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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