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서 땅은 자본주의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과거 산골 마을에 살 때는 경계선이
모호했다.
일제강점기에 측량하고 오랜 기간
그냥 농사를 지으니 자기 땅이려니
생각했다.
아버지가 유산으로 물려주신 땅은
넓은 논이었다.
그건 동네에서 1필지로서는
가장 큰 땅이었다.
지금부터 40년 전이고 당시
100만원에 구입한 걸로 기억한다.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나는 서울로
상경해서 학교를 다닐 때였다.
동네 이장이 연락이 왔는데 시골에
도로가 난다고 했다.
그런데, 그 땅이 절반 가까이 도로로
들어간다고 했다.
이후 보상을 받으라는 시청의
우편을 받고 시골로 내려갔다.
그때 측량된 내 땅을 보니 실제
농사지을 때의 땅하고는 좀 차이가
있었다. 도로가 면적의 40%나
들어간다고 했다.
아직 아시는 형님이 계서서 도로에
관한 다른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원래 이장 네 땅으로 도로가 나기로
설계되었는데 이장이 바꾸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화가 났다.
"아무도 없다고 그렇게 하면 안되죠."
이미 계획은 확정되고 보상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들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시청에 들려
찔금 보상을 받아왔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서 직장을
다니느라 그 일은 잊고 있었다.
그 일 이후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많이 변해 있다.
산골마을에 도로가 나고 근처에
식당이 한두 개 생기고 주차장도
생겼다. 국립공원 매표소도 앞에
생겼으니 땅의 가치는 계속 올라
있었다.
지난번 주차장 앞 식당에서 본 그 형이
한마디 했다.
"그때 이장이 자기네 땅으로 길을
냈으면 지금 갑부가 되었을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