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중학교를 다닐 때 일이다.
남한강을 건너서 중학교를 다녀야 했다.
멀고 먼 중학교를 돌아올 때는 늘 해가
질 무렵이었다.
강을 건너 우리 마을까지는 약 2KM
거리였다.
이 거리는 학교 다닐 때 마의 거리였다.
특히 그믐날이 되면 온통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가야 했다.
손에는 작은 손전등만이 나의 존재를
알게 했다.
강 근처에는 조그만 마을과 조그만 구멍
가게가 있었다. 그 가게에는 가끔씩 우리
동네 아저씨들이 소주를 먹으며 쉴 때가
있었다. 난 그때가 가장 좋았다.
왜냐하면 우리 마을까지 동네 아저씨를
따라 같이 올라가면 무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믐날 마침 동네 아저씨가 구멍가게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잘 되었다 싶어 개울에 앉아 아저씨가
일어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어둠이 짙게 깔리고
풀벌레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와도
일어날 줄 몰랐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아저씨에게
다가가
"아저씨, 집에 안 가유?" 물어보는데,
청천벽력 같은 대답,
"여기 가겟집에서 자야겠다"
앞이 캄캄했다. 주변도 캄캄했다.
'어떻게 하지. 아까 올라갔으면
어두워도 한참을 올라갔을 텐데.'
어쩔 수 없이 난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집으로 가야만 했다.
아무도 없는 산길을 혼자 가야 했다.
아랫마을을 벗어나자 온갖 풀벌레
소리가 점점 귓가에 거슬린다.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낮에 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길 옆
무덤도 왜 이렇게 무서운지.
손전등을 앞으로만 두고 후다닥
달리기 시작했다.
그 무덤에 대한 얘기는 진작에 잘
알고 있었다. 노처녀가 뭔 일인지
겨울 남한강 얼음 위에 신발을
나란히 두고 숨구멍으로 쏙 들어가
죽었다는 그 무덤인데. 자꾸 내 뒤에
허연 게 뭔가 따라온다.
'엄마야....'
난 죽을 똥 말똥 황영조도 저리 가라는
달리기로 동네 입구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뛰었다.
돌부리에 발목이 삐끗했다.
통증이 아려왔다.
그래도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불빛이 보이는 동네에
도착해서야 난 덜썩 누워버리고 말았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난 살았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그 길.
혼자서만 가야 했던 그 길.
그 어둠에 혼자 덩그러니 떨어졌을 때.
그제야 난 온 힘을 써서 그곳을 탈출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난 그때를 항상 기억한다.
사람이 극한의 상황에 도달하면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철저히 혼자일 때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