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강원도 태백시 검룡소라는 곳에서 발원을 하여 충북 북동부와 경기도 남동부를 거쳐 경기도 양평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으로 흐르는 강이라고 한다.
내 고향은 남한강이 흐르는 단양과 청풍 사이에 있다. 중학교까지 그곳에서 자라고 학교를 다녔다. 남한강에서 수영도 하고 물고기도 잡고 다슬기도 잡으면서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를 떠나기 전에 1~2년간은 모든 주변 동네가 떠들썩했다. 충주댐 완공으로 높은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먼 타지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고향 마을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문제가 없었지만 강가와 인접한 마을을 모두 정리해야 된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초등학교도 물에 잠기게 된다고 했다. 그때 어린 시절이라 얼마에 보상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정든 고향이 없어지고 새로운 타지에서 농사만 지으며 평생 살은 주민들의 불안감은 무척 컸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중3 때, 그러니까 충주댐 담수 1년 전에는 남한 강변으로 엄청난 골재 트럭이 다녔다. 남한강은 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모래와 자갈, 그리고 모양이 희귀한 돌들을 만들었다. 특히 오석이라고 하는 돌은 돌 줍기를 취미로 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는 최고의 돌인데 남한강에는 깔려 있었다. 수석 채집가 분들은 억대에 달하는 돌을 채취하기도 했고 포클레인으로 깊이 파서 돌을 채취하기도 했다. 우린 중학교를 걸어 다니면서 자주 지나다니는 트럭이 태워 주면 그저 좋게만 생각되었다. 가끔 수석 채집가를 만나면 난 멋진 돌을 주어서 주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난데없이 구급차가 여러 대 휭 지나갔다. 뭔가 싶어 강가에까지 내달렸는데 모 방송국 헬리콥터가 남한강의 마지막 모습을 촬영하다 강 양쪽의 산을 가로지르는 전선을 보지 못해 추락한 사건이 있었다. 지금도 블로그나 기사 내용을 검색하면 나온다. 좀 더 가까이서 촬영하려다 사고가 났다. 일행은 모두 순직했다고 한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막 구급차가 되돌아가고 있었고 헬기 잔해 일부만 강가에 보였다.
그 사건이 내가 남한강을 건너 다닌 마지막 기억이었다. 고등학교를 청주로 나온 해, 그해 충주호 담수가 시작되었는데 생각보다 엄청난 높이로 물이 차서 과거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호주 주변을 따라 새로운 길이 생겼다. 지금 충주호 주변에는 많은 위락시설이 들어서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 고요한 호수와 경치에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계절별로 서로 다른 느낌을 주는 이곳은, 또 어떤 이에게는 아픈 상처를 받았던 곳이라 생각되니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