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절친했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국에 있을 때 가끔 만나
사는 얘기도 고민도 털어놓기도 했지만
바쁜 생활에 서로 연락이 없었다.
그 친구는 학창 시절 생각도 많고
올바른 말만 해서인지 사회생활이
그다지 순탄치는 않았다.
상사의 미움을 사 부산으로 가서
근무하기도 하고
지금은 수원에서 근무한다고 한다.
그런 친구가 보고 싶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새로 카톡을 연결한 후
게시된 사진들을 살펴봤다.
친구는 딸 둘에 막내아들을 두고
있는데 어쩐지 보통 아빠들은
딸들 사진도 많이 올려놓는데
유독 막내아들 사진만 가득했다.
친구에게 안부를 물어보니
별일 없이 평범하게 생활한다고 했다.
“근데 너 아들 사진만 왜 이리 많으냐?”
라고 물으니 친구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했다.
“실은 내 아들을 보면 아버지가
많이 생각나서 그래.” 라며 울먹인다.
친구는 사회에 나오기 전까지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이가 좋지 않다기보다 일방적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지냈다.
친구의 눈에 보인 아버지는 젊은 시절
술도 많이 드시고 엄마와 자주 다투시고
아들에게 무뚝뚝하셨다고 했다.
그런 아버지가 너무 싫었고
아버지와의 대화는 생각조차 못했고
그렇게 학창 시절까지 왔다고 한다.
그런데 친구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점점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사람과의 유대관계, 냉혹한 사회현실,
특히 결혼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으로서의 중압감, 등으로
그동안 닫혀있던 마음의 문이
점점 열리고 있었다.
다섯 식구의 가장으로서 힘들어도,
자존심 상해도, 옳은 말을 해야 할 때도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책임감에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되는 자신에 대해
갈등이 많았다.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과거의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해 가면서
아버지에게 언젠가는 꼭 고백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는 자식의 고백을
듣지 못하고 영영 떠나버리셨다.
친구는 그게 마음이 아픈지 아들만 보면
아버지가 오버랩되어서 혼자 울 때도
있다고 했다.
“아버지! 아들로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긴 세월 동안 그저
철없는 자식으로 살았습니다.
전쟁터로 나가는 아버지의 마음은
이제야 조금이나마 느껴 봅니다.
제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늘 활짝 열고 계셨음을
이제야 알게 됩니다.
언젠가 제가 문을 열 때가 있으리라
생각하시곤 늘 지켜보고 계셨겠죠.
이제 제가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곤 아버지에게 한 걸음에 달려가고
싶은데 아버지는 그 자리에 없으시군요.
아버지는 이것 조차도 아셨을 겁니다.
아들이 사회에 나가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잘 살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셨겠죠. 그래서 늘 기다려 주신 거죠.
이제 유치원에 들어간 아들을 볼 때면
저도 아버지 같이 묵묵히 지켜봐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오늘도 너무나 눈물이 납니다.
아버지에게 꼭 해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 아끼고 아꼈는데
이제 세상에 없으시니 누구에게 말을
해야 하나요.
이 말은 꼭 한번 진심으로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내 아버지가 되어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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