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아직 어렸었나 보다.
세상을 덜 살아서 그랬나 보다.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면 아무리
시골의 학교라도 농사일을
하루 멈추고 부모님들은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달리기도 같이 하고 점심
김밥도 같이 먹으며 즐거운
한 때을 보냈었다.
구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나는
아버지가 운동회에 오시는 게
점점 싫어졌다. 부모와 짝지어
달리기를 할 때면 흰머리의 아버지를
보며 젊은 다른 아빠와 비교가 되고
아이들이 놀리는 게 무엇보다
싫었다.
육 학년 때 초등학교 마지막 가을
운동회 날은 부모님께 미리
알리지 않았다. 아무 말을 안 했으니
어머니는 평소처럼 도시락을 싸
주셨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이
안 와서 안달인데 난 안 오시는 게
더 좋다고 생각되었다.
오전 행사가 끝나고 각자 부모님들과
점심시간을 가졌다. 다들 돗자리를
깔고 싸 온 김밥에 사이다를 먹을 때
난 몰래 교실로 들어와 도시락을
먹었다.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슬픈 생각에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아 억지로 삼켰다. 교실 밖엔
가끔 크게 들리는 마이크 소리와
아이들 소리만이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집으로 와서 난 아무 일 없는 듯
저녁밥을 먹고 피곤해 일찍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고 문득 선잠이
깨이는데 아버지가 자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는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계신다.
투박하고 나이 든 손인데
어찌 그리 보드라운지
스르르 다시 잠이 들었다.
그땐 한 번이라도 아빠라고
부르고 싶었다. 흰머리의
아버지가 싫었고 창피하게
느낄 때가 많았다.
세월이 흘러 이제 내가 아빠로
불리면서 아버지란 말이
더욱더 그리워지는 것은
마음속 밑바닥에 흰머리
아버지가 늘 자리 잡고
계시기 때문일까.
노트 : 가끔 자녀들이 아빠라고 부를 때면 문득 어린 시절 흰머리 아버지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