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란 개나리가 피는 때가 오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오래전 이야기다.
그때가 첫째가 두 살쯤 되었을 때.
토요일 오전 일을 마친 후
직장 선배와 점심을 먹는데
다음날 일요일이라
선배는 소주 한 병을 깠다.
소주가 좀 당겼는지
다소 취할 정도로 마셨다.
"선배, 차는 어쩌고요?"
술을 먹지 않은 나는
할 수 없이 선배 차를
몰아 그의 집으로 향했다.
선배가 가르쳐준 길은
급한 경사 길을 굽이쳐 올라
아주 높은 꼭 때까지 다다랐다.
마지막 차가 들어가는 입구도
낮은 턱에 걸쳐서 들어가야 했다.
집 위로는 노오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선배 집에 도착하니 처음 보는
형수가 고맙다고 했다.
형수는 고마움의 표시로
다과를 급히 내 왔다.
그리고 맥주 한 잔을 주면서
아래로 내려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으니 한잔하고 가라고 했다.
내가 직장 사람 중에
집에 처음 온 사람이라고.
선배와 형수, 나 이렇게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방에서 잠을 깬
첫째 딸을 거실로 데리고 나왔다.
회사에서 장애인이라는 말은
얼핏 들었지만 실제 전혀 움직이지
못할 정도 중증 장애아라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세 시간쯤 아이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두 분이 하셨다.
아이 물리치료를 위해 헌신하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 당시는 그러려니 했다.
훗날 나도 장애인 가족이 될 줄은 모르고.
얘기를 하는 동안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베란다로 간 형수가
"와, 눈이 엄청 왔네.
개나리 피는데 무슨 눈이 이렇게 와."
밖은 햐얀 눈으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전망 좋은 집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고통과 환희,
삶과 죽음을
모두 뒤덮고 있는 듯했다.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큰일이네 어떻게 내려가지?"
내가 간다는 걸 한사코 말렸다.
구두 신고 비탈길 내려갈 수도 없다고.
그러곤 한참을 얘기 시간이 이어졌다.
결국 어두워진 밤길에 몇 번을 넘어지며
비탈길을 내려왔다.
그 이후로는 형수를 만나지 못했다.
나도 다운증후군의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생활에 쫓겨 그날의 일은 잊고 있었다.
그로부터 15년이 넘게 지났을까,
회사 게시판에 선배 빙모 부고가 떴다.
조용히 방문한 장례식장에서
난 선배를 만나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런데 선배가 형수를 부르는데
형수가 날 보더니 첫마디,
"어, 개나리 아저씨 왔네."
2024.03.15 - [자작시] - 봄소식 전하는 냉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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