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층 지인이 필리핀 재래시장에서
산 병아리 중 세 마리를 선물로 주셨다.
딸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라면상자 속을
들여다보며 모이도 주고 놀아 주었다.
아이의 정서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두 마리가 제 명을 다하지
못했고 한 마리만 겨우 살아남아 앞
뜰에서 지렁이를 부지런히 찾아 먹고
있다. 이름을 병발이라 했다.
병발이는 눈에 띄게 커져만 갔다.
보다 못한 아떼(필리핀 아주머니를
부르는 말)가 고향에 갔다 오면서
예쁜 토종 병아리를 데리고 왔다.
우리는 병순이라 불렀다.
병순이는 체구가 작고 빨리
자라지 않았다.
병발이는 흰 털을 자랑하며
벼슬도 멋지게 자라고 있었고
눈도 부리부리했다.
항상 나무 위에 올라가 자기가
대장인 양 꼬꼬댁거렸다.
병순이는 새색시처럼 나무 밑에서
지렁이 찾기에 바빠 병발이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가 난리가 났다.
병순이가 알을 낳았다고.
우르르 몰려가 병순이가 나은 알을
보며 신기해했다.
병순이는 얼굴은 초췌해 있었다.
이후로 두 개의 알을 더 낳았다.
그리곤 닭집에 머무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많아졌다.
우리는 안쓰러워 물과 쌀을 앞에
밀어주어도 식욕이 없는지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가끔 나와서 병순이는
운동을 하는 듯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집을 멀리 떠나 지렁이 잡는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병발이가
기회다 싶어 찝적거리기도 했는데
병순이는 단호하게 응징하며
병발이한테 뭐라 하는 것 같았다.
며칠째 병순이가 집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딸아이가 가져다준 쌀도 먹지
않고 물만 겨우 축이고 있다.
우린 병순이의 건강이 걱정됐다.
병발이도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초조해했다. 평소 같으면 나무 위에서
꼬꼬댁을 외치거나 병순이를
찝적거렸을텐데...
일요일 아침, 딸아이가 난리가 났다.
우리는 또 우르르 병순이 집으로
가 보았다. 딸아이는 병순이 날개
속에서 뭔가 움직인다고 흥분해서
말을 한다.
가만히 보고 있는데 갑자기 병순이
날개 사이로 병아리 한 마리가 고개를
쏙 내민다.
오!!! 병순이가 엄마가 되었네...
얼마 후 한 마리 더.
그런데 알 한 개는 생명이 태어나지
못했다.
이후 병아리 한 마리는 가족 외출 중
실종됐다. 주변의 고양이가 유괴했음에
틀림없다.
병발이와 병순이, 그리고 병아리 한 마리,
이 세 가족은 나들이를 자주 했다.
병발이도 이제 책임감이 주어졌는지,
병순이 한테 한마디 들었는지
사주 경계를 확실히 했다.
우린 병아리 이름을 병돌이라 불렀다.
필리핀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필리핀 직원에게 병발이 가족을 부탁했다.
병발이 가족이 번창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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