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3학년 때였다.
가을걷이가 끝난 밭에서는
아이들이 하굣길에
배고픔을 달래기에 위해
고구마 줄기나 땅콩 줄기를 찾아
나무 꼬챙이로 땅을 파는 일이 많았다.
가끔 수확하다 지나친 고구마나 땅콩을
켈 수 있어 횡재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철에 따라 고구마를 수확하기 전이나
땅콩을 캐어 말리느라
밭에 쌓아 놓는 때엔
아이들은 유혹을 피하기 힘들었다.
지금은 서리라는 말이
사라진 지 오래고
절도죄에 해당하는
중한 범죄에 해당된다.
그러나 당시는 배고 품이
도덕을 앞서는 상황이 많았다.
어느 날 그때가 왔다.
비탈밭에 수확을 한
땅콩 더미가 서너 군데
쌓여 있었다.
하굣길에
아이들이 찜해 놓은 곳인데
어느 날 여럿이 우르르 달려가서
조막손으로 땅콩을
한주먹 훑어 쥐었다.
그리고 들킬세라 내달아났다.
나도 뒤질세라 땅콩을
손에 넣는 순간
어디서 벼락같은 소리가 들렸다.
"야 이놈들아!!!!"
땅콩밭주인의
목청 터지는 소리에
앞선 아이들은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갔다.
얼떨결에
나도 뛰기 시작했는데
가을 수수를 수확하고 베어낸
뿌리에 그만 다리가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하늘이 노랗게 되다가
다시 까맣게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땅콩밭주인은 멀리서 소리만
버럭 지르고는
아이들이 도망가는 걸 보고
다시 가버린 모양이었다.
대자로 넘어진 난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려니
배에서 뭔가 촉촉한 느낌이 들었다.
쪼그만 핏자국이었다.
땅콩밭 변두리에 수확한 수수대를
자르고 난 뾰족한 부분이
내가 넘어지면서 야무지게
내 배에 상처를 주었다.
다행히 뱃가죽에 살짝 스치는 정도여서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그래도 쪼그만 손에 쥔 땅콩은
놓지 않았다.
몇 안 되는 땅콩을 까먹으면서
오다 보니 먼저 도망친 아이들이
생 땅콩을 먹어서 그런지
길가에서 이리저리 설사 똥을 싸는지
야단이었다.
집으로 와서는 엄마 아버지에게
혼날까 봐 아무 일도 없는 듯
저녁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솥단지에서
뭔가를 푸짐히 퍼서
소쿠리에 담아 내놓으셨다.
"윗집에서 햇땅콩이라
맛보라고 줬으니 많이 먹어라!"
.......
"네.....'
지금까지도 배꼽 옆에 희미한 상처를
볼 때면 땅콩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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