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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엄마 손에 이끌려 절에 간
적이 있었다. 엄마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 다니시던 절에 들렸을 때
스님이 날 보시고 자기 밑에 오면
좋은 중학교, 고등학교도 보내 주고
하겠다고 엄마와 나에게 말했다.
엄마가 내 얼굴을 보았을 때,
난 고개를 살랑살랑 저었다.
내가 그랬더라면 스님이 되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청주에서 자란 친구가
있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가 어렵게 기르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는 다니는 교회로 나를
초대했고무척 신경을 써 주었다.
이후로 1년 정도는 같이 성경공부를
한 것 같다. 친구는 엄마의 반대에도
결국 신학대학으로 목표를 정하고 나보고
같이 가자고 했다.
난 고개를 살랑살랑 저었다.
내가 그랬더라면 목사님이 되었을 것이다.
대학교 때 노랑머리 신부님을 알게
되면서 성당을 자주 다니게 되었고
그곳에서 주관하는 봉사활동에도 참여하게
되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
참여한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신학의 길을
걷고 있었다.
노랑머리 신부님의 멋진 모습에 신학으로
좀 바꿔볼까 생각했다.
난 고개를 살랑살랑 저었다.
내가 그랬더라면 신부님이 되었을 것이다.
많은 세월이 흘러 지금 난 뭐 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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